문을 여니 '딸랑-'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고, 코 끝에는 갓 구운 빵들의 냄새가 달콤하게 풍겨왔다.

"실명씨 오늘 모카붓세 진짜 맛나네!"

가게 안에 들어와서 제일 첫번째로 나를 반겨주는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만든 빵을 칭찬하는 센리의 목소리였다. 정말 행복하다는 목소리의 센리는 오랜만이였기에 기분이 나쁜 감정도 드러낼 틈이 없었다. 살짝 실명씨를 째려봐주고 나자 나와 눈을 마주친 실명씨가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조금은 기분이 괜찮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도끼눈을 풀고 나서야 그를 쳐다볼 수 있었다. 센리의 손에는 커다란 모카붓세가 한입 베어물려진 채 자리잡고 있었다.

"실명씨 원래 붓세가 프랑스어(Bouche)로 한입크기 라는 뜻이란거 알아요?"

"네, 물론 알고 있죠. 제가 파티시에인걸요? 치토세씨와 메이씨가 좋아하시는 거라서 특별히 크게 만들어 봤어요~ 선물로 담아 놨으니까 가져 가세요!"

실명씨가 만든 빵은 맛있다. 이 주위에서도 실명씨의 가게는 인기가 많아서 늦게 오면 원하는 빵은 모두 팔리고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렇게 센리가 실명씨의 빵을 먹고 기분 좋아하는 것을 보니 착잡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나는 센리를 좋아하지만 그는 다른 여자를 좋아하는걸?

짝사랑이라니. 갑자기 한없이 슬퍼졌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실명씨가 주는 포장백을 받아 센리의 옆자리에 앉았다. 커다란 그의 손에는 여전히 실명씨가 만든 센리의 손보다도 더 큰 붓세가 들려져 있었다. 뜬근없지만 그 붓세에게 질투가 났다.

"메이, 니도 먹어봐야제~"

 

"...웁?!"

멍 때리며 질투를 하고 있는데 입 안으로 폭신폭신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모카향이 입 안에 퍼지고, 행복할 정도로 달콤한 크림이 가득 느껴졌다. 우물거리며 먹는데 센리가 물어왔다. '맛있제?'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맛있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라, 맛있다 했제.' 하며 씨익 하고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센리의 사랑을 받는 그 누군가가 부러워졌다.

"이거 만드는 방법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실명씨가 웃으며 센리를 쳐다 보았다. '만들어 보시게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이 왠지 얄밉게 들렸다. 우리 센리, 뭐든지 잘 하거든요?! 실명씨의 빵 만큼은 아니겠지만 센리는 못하는게 없으니까 금방 배우고 잘 하게 될거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낼 뻔 했다. 잘 참았다, 메이.

"가능 합니까?"

반짝반짝한 눈으로 실명씨를 쳐다보는 센리를 쳐다보며 실명씨에 대한 불쾌감이 솟아 올랐다. '네, 물론이에요. 특별히 알려 드릴게요?' 라고 주저함 없이 말하는 실명씨를 향해 와락 껴안는 센리가 미워졌다. 또 그걸 받아주는 실명씨는 더더욱 미웠다. 거기에 센리가 들떠하는 모습에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

 

며칠간 센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학교가 끝난 후에 만나러 가도 바쁘다는 말만 계속 하는 그를 보며 많이 속상했다. 그녀를 줄 붓세를 만드느라 바쁜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센리를 만나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가 그녀를 향해 만든다는 붓세 때문에 우울한 감정은 계속해서 증폭 되어만 갔다.

오늘도 여전했다. 직접 내가 찾아 갔는데도 불구하고 센리는 '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다.' 라는 말만 했다. 설마 나를 만나기를 거부한다거나..? 여자가 직접 찾아갔는데 만나주지 않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심보냐고! 이제는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는 끝내 화를 못이겨 눈물이 나왔다.

"다녀왔습니다."

조금 진정한 뒤에 집에 돌아가보니 부모님께서 모두 와 계셨다. '준비 다 됐으니 어서 옷 갈아입고 오렴.'이라는 소리에 '준비'라는 단어에 의문이 들었지만 대충 네, 하고 대답을 해 주었다. 방에 들어가 한참을 밍기적거리며 옷을 갈아 입었다. 울어버린 눈이 살짝 빨개져 있어서 대충 정리를 한 후에 부엌으로 나갔다.

"......?!"

"생일 축하한다, 메이!"

식탁 위에는 케이크와 각종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래서 '준비 다 됐다' 라는 말을 하셨구나. 이제야 깨달은 내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아, 오늘 내 생일이었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날짜가 벌써 그렇게 됐다는 생각이 됐구나. 오늘이 내 생일인데 센리는....... 집에 와서까지 센리 생각만 하는 내가 약간은 한심했다. 그리고 기분은 한없이 곤두박질 쳐졌다.
마음 편히 생일을 보내기는 글렀다.

대충 가족들끼리의 생일을 보내고 방으로 오자마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메이제? 이제야 끝났구마. 실명씨 가게로 좀 와줄 수 있겠나? 사과하고 싶어서 그렇구마."

사과라니....... 생일마저 센리 너는 어떤 여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너의 그녀를 생각하고 있어놓고는 무슨 사과를 한다는거야. 하지만 차마 싫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보다 알았다는 말을 먼저 하는 내 못된 입을 한대 쥐어 박고 싶었다.

사람 마음은 어떻게 자기 컨트롤이 그렇게 안되는지. 일단 만나러 간다는 약속을 했으니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는 집을 나왔다. 집에서부터 실명씨의 가게까지는 10분 정도이지만 정말 죽을듯이 뛰어서 5분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에게 이런 기적이.......

"...?"

어두컴컴한 가게가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불 꺼진 실명씨의 가게에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설마 센리가 나를 부르고 그냥 갔겠어? 라는 생각에 가게쪽으로 다가갔다. 어두운 내부를 보기 위해 손으로 눈쪽을 감싸서 유리문쪽으로 얼굴을 가까이 다가갔다.....?

"!!"

나의 무게가 문쪽으로 옮겨지자 가게문이 열렸다. 서서히 어느 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주방쪽에서 촛불이 꽂혀진 생크림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센리가 노래를 부르며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메이~ 생일 축하 합니다~"

어리둥절한 내 앞에 선 센리는 '뭐하는기고. 후딱 촛불 안부나?'라는 말에 정신이 차려졌다.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촛불을 불고 나자 가게에 불이 켜졌다.

"속 상했죠, 메이씨? 죄송해요. 치토세씨 잡고 있어서. 되게 열심히 하시더라구요."

난처하게 웃고 있는 실명씨의 얼굴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케이크가 약간씩 삐뚤빼뚤했다. 프로의 솜씨가 아닌걸 보니,

"이거, 센리가 만든거야? 지금까지 붓세 만든게 아니라 이거 때문에?"

역시나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센리를 보며,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눈물. 최고의 생일 선물. '울지 말그래이'라는 당황한 목소리의 센리를 향해 두 팔을 뻗어 와락 안겼다.

"메이, 사랑하구마. 생일 축하한다."

fin